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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우리소식
2022 년 08 월 10 일 (수요일)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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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이 들려주는 추억의 이야기
최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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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셀러리맨.

소금 받는 사람인가 소금 파는 사람인가. 어쨌든 소금처럼 짠 땀방울 흘리며 일해서 딱 먹고 살만큼 돈 받는 사람. 셀러리맨이다.

굶어죽지 않을 만큼 준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곰곰 생각하고 또 따져보면 그런 말이 생각나도록 빠듯한 것이 셀러리맨의 경제인 것 같다. 굶어 죽을 만큼 주면 그 사회 구조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이 커질 것이니 안되고, 넉넉하다고 느낄 만큼 주자니 자본가 주머니로 들어오는 것이 조금이고. 그래서 따아악! 알맞게 월급을 책정하는 것이리라. 일터에 대한 미련을 갖고 일할 만큼의 월급. 그 월급으로 알뜰살뜰 먹고살고, 조금씩 저축해서 언젠가는 내 소유의 부동산도 하나쯤 마련하리라는 꿈을 꾸고 있기에 셀러리맨들의 하루하루는 연명되고 있는 것 같다. 만약 자식이 있다면 그 자식만큼은 다르게 살아주길 바라는 희망을 자식에게 걸지만, 그러나 돈 놓고 돈 먹는 게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인데, 놓을 돈 없는 자식인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어서 빈손으로 돈 먹어 올 수 있겠는가 말이다. 북에서 소 한 마리 값을 손에 쥐고 온 정주영씨가 소 천 마리로 되 갚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한 마리라는 밑천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물론 개개인의 타고난 능력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속담을 일깨워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개천이라는 토대 위에서 용 나기가 힘드니까 그런 속담이 생겼다고 본다면, 우리 사회의 99퍼센트를 이루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여진다.

나 또한 용이 되지 못한 평범한 사람이고, 내 남편 역시 아직 용이 되지 못한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누구나 노력하면 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지배계급이 심어준 허위의식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여기서 내 남편에 대한 언급을 하며 ‘아직’ 이라는 말로써 용이 되는 것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놓지 않고 있는 의식의 일면을 본다. ‘아직’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용이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의 표시이리라. 아니면, 내게 심어진 허위의식에 대한 환상이 아직 현실감을 누르고 있다는 뜻도 될 것인즉, 그러나 나는 이렇게 믿고 싶다.
‘아직’이 ‘언젠가’로 이어지는 꿈을 놓지 않는 것은 내가 남편에 대한 희망의 고리를 잡고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끝없이 희망을 품게 하는 것은 사랑의 힘이라고.

언제던가? 내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읽은 것이. 아마 고 2나 고 3때인 듯하다. 마음 한켠은 늘 학력고사에 눌려있는 상황에서 난 소설책을 읽었다. 그래서 소설이 주는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책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중. 고등 학교 때 읽었던 책들을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읽어보면, ‘옛날에 내가 이 책을 읽고 뭘 생각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그저 명작이라니 읽고 보자는 욕심이 앞섰던 듯도 하고, 시험에 찌들어 사는 일상에 대한 반항이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삼중당 문고판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읽었다. 그리고 한참을 ‘가난한 사람들’을 떠올릴 기회가 없었다. 내가 뭐든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젊은 시절엔 ‘가난한 사람들’을 떠올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경제적으로는 가난한 대학시절이었지만, 난 가난하다는 생각조차 할 시간이 없이 부자였다. 원한다면 미래엔 부자가 될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부자나 가난하다는 경제적 기준은 그 시절 나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던 것에 있다.
그러나 나는 요즘 ‘우린 참 가난한 연인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내가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탕을 선물할 생각에 기뻐하던 주인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이 책을 읽던 여고시절엔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건데 사탕을 선물하는 것 같은 하찮은 일로 사랑을 느끼며 기뻐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젠 그 가난한 사람들의 사랑이 내게도 전해져 오는 것을 느낀다. 또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을 표현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진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내가 나를 가난하다고 표현하면 야유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그러나 내가 예전엔 가난이라 느끼지 못했던 순간이 문득문득 가난했던 순간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땐 왜 그렇게 돈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추억. 그 문득문득 떠오르는 시간을 찾아 ‘가난한 우리들’을 반추해 본다.

이 되돌아봄은 가난에 대한 한탄이나 과거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남편과 함께 했던 날들에 대한 손질이다. 오래 묵은 이불솜을 한 켜 한 켜 손질하여 폭신하고 따뜻하게 새 숨을 주 듯, 오래 묵어온 추억에 대한 따뜻한 손질이다. 그 따뜻함으로 ‘가난’을 부끄럽지 않게 말할 수 있고, 행복했었노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나의 되돌아봄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아름다운 미소하나쯤 퍼지게 하고 싶다.
그리고 이 여행기를 쓰는 동안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을 다시 읽어 봐야겠다. 그 새로 얻는 느낌이 기억 속의 느낌과 어떻게 다른 지도 생각하면서.



평범한 셀러리맨인 남편과 주부인 내가 10년에 걸쳐 여름휴가를 떠난 이야기.
소금같이 짠 땀을 흘리며 일하다가 일년에 한 번 여름휴가를 준비하며 설레었던 이야기.

역시 가난한 친구들과 함께 보낸 넉넉한 휴가 이야기.
지금 행복했던 순간들이 뇌리 이곳저곳에서 막 솟아 나온다.

잠깐, 여기서 이 기행문의 처음과 끝을 같이 하게 될 남편의 호칭을 정리해야겠습니다. 사실 남편이란 말은 내게 좀 생뚱스럽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그이’라거나 ‘우리 그이’ 라고 합니다. 그런 호칭이 어색할 때는 ‘그사람’ 으로 부르지요. 그리고 저 만큼 앞서가는 남편을 소리쳐 불러야 할 때는 그냥 이름 석자만 부르기도 합니다. 이 중 내가 제일 많이 쓰는 호칭이 ‘우리 그이’ 인데, 이 호칭은 가만 생각하면 어패가 있어서 좀 꺼려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그이가 아니고 ‘나의’그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고 오해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냥 ‘그이’로 공식 호칭을 정해야겠습니다.


설악산 기행

인생의 구비 구비를 같이 넘어줄 사람

시간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이렇게 뒤돌아 보니 참 많이 흘러왔는데, 그 세월의 강줄기에서 아주 미미한 부분의 또 미세한 부분에 해당하는 산행을 잘 기억해 낼 수 있을지 조금 걱정도 됩니다. 더구나 단순히 나의 시시콜콜한 신변잡기 수준을 넘어 마음으로 함께 여행해 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여행정보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긴장이 됩니다.

그저 마음을 비우고 써야겠습니다. 나 모르게 이 여행기를 읽고 시치미 뗄 그이가 빙긋 미소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여행기가 될 거라는 조촐한 마음으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이’를 호칭으로 해서 설악산 기행을 떠나겠습니다.


설악산 등반은 우리 둘이서 처음 가는 긴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고 준비 할 것도 많았습니다. 그때가 눈에 선합니다.
텐트가 없었던 우리는 그이의 보너스로 텐트와 코펠을 사기로 했습니다. 주말에 우린 종로에서 만났습니다. 휴가철이라 여러 군데의 스포츠 용품 매장에서 텐트를 전시해 놓고 있었습니다. 가격 비교를 하느라고 몇 군데를 돌아보았습니다. 산악용 텐트이므로 무겁지 않고도 내구성이 있는 것을 선택하느라고 꽤 고민을 했는데, 결국은 ‘TAKE TO NATURE'라고 쓰여진 돔형 텐트를 샀습니다. ’가자, 자연으로!‘ 라는 문구가 맘에 들었습니다. 텐트는 3-4인용이라고 했지만 짐 놓고 둘이 쓰기에 딱 맞는 크기입니다. 텐트를 살 때 배수로를 파거나 팩을 박을 때 쓸 수 있는 망치를 사은품으로 받았습니다. 또 같은 곳에서 코펠도 샀습니다. 오래 쓸 것이라서 좋은 것을 샀습니다. 흰색 알루미늄으로 된 것보다 비쌌지만, 좋은 것으로 사서 오래 쓰자는 생각으로 검은색 코팅이 된 것을 선택했습니다. 아마 내가 ’오래 쓸 것‘ 보다 더 강조해서 ’평생 쓸 것‘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코펠이야 구멍나지 않는 이상 평생 쓸 것이기 때문이지요. 아마 좀 비싸다고 망설여질 땐 지금도 그 표현을 쓰는 것 같습니다.
’평생 쓸 건데 좀 비싸도 좋은 걸로 사야지.‘
그렇게 물건을 고르는 덕분에 우리 물건들 중에는 10년이 넘은 물건이 많습니다. 하다못해 좀 비싸다 싶은 옷을 살 때도 ‘한 10년은 입을 건데.’ 하고 우겨서 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정말 10년을 입는 옷도 많답니다. 아주 큰 목돈을 쓸 땐 ‘평생 입을 것’이란 표현을 쓰지만요.내 것 보단 그이가 필요한 물건을 고를 때 많이 쓰는 표현이지요.
텐트와 코펠은 샀지만 배낭과 담요는 빌렸습니다. 그이 매형한테서 빌렸는데, 도로 갖다드리지 않고 얼렁뚱땅 우리가 띵겨먹었습니다. 그 후로 한 일년을 더 쓰다가 낡아서 버렸습니다.
그래도 고마운 마음으로 썼던 추억을 지금도 갖고 있으니, 우리 배낭 빌려 달라고 하실 때 두 말 없이 빌려드리겠다는 생각을 지금 합니다.
설악산 가는 준비는 텐트와 코펠을 장만한 것으로 거의 다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 때는 판초우의를 살 생각은 못하고 대신 김장용 비닐봉지를 샀습니다. 비가 오면 배낭을 싸거나 아니면 얼굴이 나오도록 구멍을 내어 뒤집어 쓸 생각이었습니다. 옷은 젖어도 되지만 배낭은 젖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배낭 속 내용물이 젖으면 무거워져서 걸을 수가 없다고 했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우린 우리 몸 가릴 것 보다 배낭 가릴 준비를 먼저 했습니다.
먹을 것은 마른 반찬과 쌀, 그리고 라면과 참치캔, 감자 뭐 그런 것을 준비했습니다.

등산 코스는 그이가 정했는데, 나는 별 걱정을 안 했습니다. 잠 잘 텐트도 있고 식량도 있으니 이제 막 올라가는 일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산을 오르는 것에 대한 걱정도 없었습니다. 나는 건강한 20대였고, 산을 좋아하는 오빠 덕에 서울 근교의 몇몇 곳은 무리 없이 따라다니기도 했었으니까요. 더구나 졸업여행으로 지리산을 갔었는데, 씩씩하게 잘 다녀온 경험이 있는지라 산을 오를 것에 대한 걱정은 별로 안 했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우리는 그이의 여름휴가에 맞춰 설악산으로 떠났습니다. 상봉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우리가 정한 코스는 백담사가 있는 용대리 쪽에서 등산하여 오색 쪽으로 하산하는 것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원통. 인제를 지나 진부령 방면으로 가다가 용대리에서 내려서 걸어갔습니다. 한번에 용대리까지 갔는지, 원통에서 차를 갈아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통을 지날 때,

“문용씨가 여기서 군생활 한 데 맞지?”

하는 얘기를 나눈 기억은 납니다.
특별한 사람과 인연이 있는 곳을 지날 땐 꼭 그 사람 얘기를 하게 됩니다. 지금은 인제가 내 친구 시댁이 있는 곳이라 인제를 생각하면 내 친구가 떠오릅니다. 그래서 인제와 원통은 내 기억 속에서 하나의 의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연결이 되어야만 무엇이든 그 본질에 따뜻한 의미 하나씩 갖게 되나 봅니다.

우리는 용대리 관리사무소에서부터 백담사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습니다. 날은 더운데 그늘 없는 신작로를 한참 걸었습니다. 길 한쪽으론 계속 계곡이 따라 흘렀습니다. 평지를 흐르는 물이었지만, 수량이 풍부하고 너럭바위로 덮인 물길은 제법 시원한 물소리를 냈습니다. 백담사를 지나고 백담 산장과 수렴동 계곡으로 접어드는 동안 우리 곁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쫓아왔습니다.

과연 백담사 계곡은 멋졌습니다. 곳곳에 있는 푸른 물웅덩이와, 하얗게 몸을 뒤채는 거친 물살에 여러 번 탄성을 자아냈습니다. 죄 있는 사람이 속죄하는 마음으로 머무르기엔 너무 수려하고 맑은 곳이었습니다.
매표소에서 백담사까지 가는 길은 평지에 난 신작로 같았습니다. 길 옆에는 연신 구르고, 부셔지고, 바위 아래로 내려꽂힐 때마다 하얀 눈사태 난 듯 알알이 피었다 스러지는 계곡의 조화가 아니었다면 지루할 법도 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린 지루한 줄 모르고 걸었습니다. 두 시간 남짓 걸어 백담사에 도착한 듯 싶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셔틀버스가 생겨 시간을 한 반쯤 단축할 수 있다고 하니, 굳이 걸어다닐 사람이 없을 듯 싶습니다.

백담사 입구에 만해 한용운님의 시비가 있었습니다. 하얗고 넓은 돌에 검게 새겨진 시는 내가 좋아하는 ‘나룻배와 행인’ 이었습니다. 그 시비 앞에서 기념사진을 찰칵 찍었습니다. 온 밤을 지새우며 써내려 갔을 한용운님의 시정신을 담아오는 것이 어디 사진 한 장으로 되겠습니까 마는, 그래도 10년이 지난 지금 그 흰 시비 앞에 웃고 서있는 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빙그레 미소가 번집니다.



나룻배와 행인(行人)
한용운

나는 나룻배 .
당신은 행인(行人)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은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行人).


세월은 흘렀습니다.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염원과 진리에 대한 갈망을 노래했던 시인이 머물던 곳인데, 그때는 다른 사람 때문에 더 유명세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자구 언짢았던 듯 싶습니다.

우리는 해 저물녘에 수렴동 대피소 못 미친 계곡에 텐트를 쳤습니다. 그때만 해도 계곡 주변에 텐트를 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안 되는 일이었다면 안 했을 거니까요. 그이도 나도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할 사람은 못되거든요.
아마 하루에 중청봉 대피소까지 갈 수는 없고 해서 일정을 여유롭게 잡았던 것 같습니다.
이튿날 우리의 산행 목표지점은 중청봉 대피소까지였습니다. 그 거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렴동 계곡에서 중청봉까지 한 10킬로미터를 걸었을 겁니다.
그런데 둘째 날 낮에 우리는 어떤 폭포 근처에서 한 번 싸웠습니다. 설악산 산행을 떠올리면 떠오르는 사건이며, ‘우린 왜 그렇게 돈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바로 그 사 건입니다.
그 당시 시중에서 한 500원 하는 포카리스웨트를 2000원에 파는 사람이 쌍폭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몹시 목이 말랐고 당연히 시원한 음료수를 먹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랑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산을 오르던 사람이 둘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반바지 차림에 윗도리도 같은 것으로 맞춰 입은 것에 은근히 부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금껏 그 사람들의 모습이 기억나는 것을 보면 내가 가졌던 은근한 부러움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사람이 우리보다 먼저 쌍폭을 올라갔는데 저마다 하나씩 음료수를 사서 들이키고 있었습니다. 그 먹는 모습만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는 빠듯했고, 또 돈이 있고 없고 떠나서 하나에 2000원 하는 음료수는 사먹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좀 참으면 되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근데 나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복잡한 심정으로 포카리스웨트를 바라본 모양입니다. 하나만 사서 나눠먹자고 했는데, 그이는 덥썩 두 개를 산 것입니다. 금방 먹어치우는 음료수에 예상외 지출을 4000원씩이나 해 버리니 나는 먹으면서도 속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사라고 했는데 왜 두 개나 샀냐고 하며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런 내가 못마땅해서 그이는 나에게 또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래서 우린 2000원과 4000원의 틈바구니에서 서로 감정을 상하고 말았습니다. 벌써 한 10년 전의 이야기니까 그 당시 2000원을 지금의 2000원으로 생각해서는 안되지요. 그때는 지하철 요금이 한 300원 이었으니까 그 기준으로 생각하면 큰돈이지요.

그때도 그깟 포카리스웨트 하나 때문에 싸운다는 것이 속상했었습니다. 그런데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 하는 따지움 없이 유야무야 싸움은 무마가 되고 우린 계속 걸었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음인지 내 다리는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힘겨웠습니다. 8월초 오후 햇살은 정말 숨을 막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이 편해야 걸음도 편해지는 모양입니다.
산의 날씨는 종잡을 수 없어 우리가 중청봉 가까이 갔을 때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내렸습니다. 그래서 텐트를 치지 않고 중청봉 산장(대피소)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비가 오기 때문인지 산장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열기와 비오는 날씨의 서늘한 산 기운이 뒤범벅이 되어 산장 안은 갑갑하기도 하고 춥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보니 비가 오는 중에도 산장 주변에 텐트를 쳐 논 것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우린 텐트를 치는 일이 익숙치 않았기 때문에 산장에서 자야 했습니다.
밥은 아마 화장실건물 처마 밑에서 해 먹은 것 같습니다. 산장은 내부가 나무로 되어 있어서 취사가 금지됩니다. 화재의 위험 때문이지요.
산에 가서는, 특히 비오는 날에는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좋습니다. 그리고 춥고 배고픈 상황에서 먹는 라면은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맛있습니다. 호호 불어가며 건져 먹는 쫄깃한 면발과 따뜻한 국물. 정말 끝내주게 맛있지요. 만약 찬밥이 남으면 국물에 넣고 끓여먹어도 좋습니다. 그러면 라면만 먹은 헛헛함을 좀 채워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밥이 남을 땐 그 다음끼니는 라면으로 정합니다. 코펠에 밥이 남은 채로 뚜껑을 꼭 닫아서 보관합니다. 그러다가 끼니때가 되면 밥을 공기에 덜어 놓고 밥이 들었던 코펠에다 물을 붓고 라면을 끓입니다. 라면이 다 끓을 때쯤 밥을 넣고 한 번 더 끓이면 맛있는 요리가 되지요. 어렷을 때는 ‘꿀꿀이 죽’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지금은 음식 갖고 그렇게 부를 수는 없으니까 ‘요리’ 라고 하는 것입니다.
밥을 퍼낸 코펠을 씻지 않으니 오염도 줄일 수 있어 좋습니다. 계곡이나 산장의 식수대에선 설거지를 하지 않는 것이 자연을 덜 훼손하는 길이 되지요. 그래서 우린 야외에선 되도록 설거지하는 횟수를 줄이려고 합니다. 어떤 경우엔 물이 없어서 설거지를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땐 어떻게 하는지 다음 ‘지리산 기행’ 편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중청봉에서 대청봉까지는 짧은 거리였습니다. 비가 내리던 날씨는 아침이 되자 말갛게 변해 있었고 여름날 햇살은 능선을 오르는 우리 숨을 턱까지 차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도 갈 길이 먼데 어쩌자고 대청봉은 그렇게 가파르게 앉아 손짓을 하는지 그냥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숨이 깔딱 넘어가게 애를 태우는 고개를 ‘깔딱고개’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정상에 가까운 곳이라 물소리마저 끈긴지 오래되었습니다. 백담계곡과 수렴동계곡을 끼고 산행을 할 때가 참 좋았단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정상은 또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 모릅니다. 겨우겨우 기어서라도 정상에 서고 나면 그때까지의 고생은 싹 잊혀져버리지요.
가슴 가득 밀려드는 설악의 기운. 눈에 가득 차고도 남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지 훑어볼 수 있는 발 아래 풍경. 저기 저 산너머 끝도 없이 멀게만 보이는 곳을 다 통과해서 내가 여기에 섰구나 하는 느낌은 그저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힘든 길을 함께 걸어온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기뻐하지요. 그렇게 잠깐 정상에서 느낄 수 있는 벅찬 감동에 젖었다가 이내 하산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대청봉’이라고 쓰여진 표지석 앞에서 찍은 사진 하나쯤 있을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없습니다. 비가 와서 사진을 안 찍은 모양입니다.
우린 오색으로 내려오는 길을 택했습니다. 오색에서 다시 동해안의 낙산으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길을 좀 잘못 들었었습니다. 갈림길이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갈까 하고 길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앞서 간 사람들이 버린 듯 한 오이 껍질이 있는 쪽으로 길을 잡았습니다. 껍질이 아직도 싱싱해 보여서 금방 사람이 지나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내려와도 우리와 마주쳐지는 사람하나 없었습니다. 또 나뭇가지에 등산로임을 알리는 리본을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길을 잃으면 큰일이니까요. 그래서 우린 자꾸만 그 오이껍질 얘기를 했습니다.

“그 오이 금방 깎아 먹은 것 같던데, 이 길로 간 게 맞겠지?”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 길이 맞을 거야. 그치? 아마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길이겠지 뭐.”

한참을 그렇게 내려왔는데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렸습니다. 계곡이 있다는 뜻이지요. 산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계곡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면 된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물이 흐르는 곳에 마을이 있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안했던 마음이 물소리에 좀 안심을 했습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계곡이 나오겠지 하며 걸었지만, 이상하게 물소리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때론 아예 안 들리다 하며 우리 애를 태웠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니 난데없이 멀리서 차 달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닙니까? 숲에 가려서 안 보이지만, 멀지 않은 곳에 찻길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린 정말 안심을 했습니다. 서로 표현은 안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있던 두려움을 떨어낼 수 있었습니다.
차 달리는 소리에 위안을 받아 걸음을 재촉해 내려가는데, 문득 등산로가 끊기며 눈앞에 2차선 아스팔트길이 보였습니다. 그제야 우리가 온 길이 바른 등산로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옳게 왔다면 매표소를 통과해야 할텐데 우린 산길에서 곧장 도로로 내려섰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운 좋게 얼마 걷지 않아 오색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야 우린 쓰고 다니던 비닐이며 찢어진 김장비닐을 벗었습니다. 배낭을 씌웠던 비닐도 벗겼습니다. 언제 또 비가 올지 몰라 잠시잠시 그치는 비에도 계속 비닐을 쓰고 다녔었습니다. 그렇게 비닐을 쓰고 다니는 우리모습이 자동차와 산뜻한 아스팔트로 포장된 문명과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습은 금방 초라해졌습니다. 산에서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차림이었는데 .....
그래서 산이 편안한가 봅니다. 산의 포근함을, 감싸주는 미덕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산 아래서 산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저만치 높은 골짜기에서 안개비는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저 안개비를 바람이 위로위로 쓸어 올리면 대청봉에는 구름같은 비가 내릴 것입니다.
왜 산은 내려오면 아쉬운 걸까요? 정작 오르는 길에서는 올라야 할 길이 멀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고 내려오면 정상을 향해 가던 순간이 그리워집니다. 현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생활의 타성이 산을 오를 때도 드러나는 것만 같아 늘 후회가 됩니다.
‘이번 산행 때는 올라가는 것 자체를 즐겨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늘 정상까지 빨리 가야한다는 조급함을 떨치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서 등산을 하며 가장 많이 보는 것이 앞사람 뒤꿈치거나 길가에 잡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산에 대한 아쉬움과 산에 대한 추억을 안고 우린 낙산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생각할 때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별을 세고 싶었지만 산행의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와 초저녁부터 하품만 하다 잠들어 버렸습니다. 아마 내가 코까지 드릉드릉 골며 잤던 모양입니다. 드릉드릉 코까지 골며 자고 있는 나를 보고 망연자실했을 그이의 표정을 떠올리니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그런 얘기가 있다지요?
남자가 산에 함께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서라. 그건 힘든 고갯길을 업고 넘을 각오가 돼있다는 뜻이다.
여자가 산에 함께 가자고 하면 같이 가라. 그건 어떤 길이든 함께 갈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우린 그런 마음으로 설악산을 다녀왔고, 그후로 10년의 세월을 함께 하며 인생의 고비고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연약한 척 하면서 손 좀 잡아달라고 하면 픽픽거리는 ‘그이’ 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설악산행을 계획하던 그때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내가 더 나이 들면 설악산을 처음 넘던 그때처럼 내 앞에 손을 내밀어 잡아줄 것임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 없다면 어떻게 이 힘든 인생의 고개고개를 함께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자기야 내말 맞지?“



<여행쪽지>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설악산을 검색했더니 이렇게 좋은 자료들이 있습니다. 이 자료를 인터넷에 올려주신 분께 감사드리며 여기 붙여 놓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

***설악산 코스 소개***

1.설악동 소공원~비선대~귀면암~양폭산장~희운각대피소~중청봉~대청봉 (10.9km, 7시간 30분)
천불동계곡은 설악산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며 기암절벽과 폭포가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코스이다. 위의 소요시간에 중간의 식사시간과 쉬는 시간을 포함하면 9시간 이상 소요되며, 전체적으로 상당히 가파르기 때문에 아침 일찍 소공원에서 출발해야 그날 중으로 대청봉까지 갈 수 있다.
산행경험이 적거나 짐이 무거우면 하루일정으로 대청봉까지 가는 데에는 무리가 따른다. 대청봉에서는 희운각대피소나 소청산장, 중청대피소에서 숙박을 한 후 오색이나 구곡담계곡, 서북릉으로 갈 수 있다.

2. 설악동 소공원~비선대~금강굴~마등령~1275m봉~희운각대피소~대청봉(14km, 10시간 30분)
공룡릉코스는 설악의 한가운데를 가르며 용솟음치는 능선을 종주하는 코스로서 새벽 일찍 소공원에서 출발해야 당일 산행이 가능하다. 10시간이 더 걸리는 코스이므로 산행경험이 많지 않으면 하루 일정으로 오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새벽에 산행을 시작해도 저녁무렵에나 희운각대피소에 닿는 경우가 많지만 내,외설악을 아우르는 빼어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3. 오색~설악폭포~대청봉(5km, 4시간 30분)
대청봉에 오르는 최단코스인 오색코스는 경사가 아주 가파르고 주변경관이 단조로운 편이지만 코스가 짧아서 시간여유가 없는 등산객이 주말을 이용하여 대청봉에 오를 때 많이 찾는 코스이다.
하산코스로 택할 경우 3시간~3시간 30분이면 오색까지 내려갈 수 있으므로 대청봉에서 하산할 때 많이 이용된다.

4. 용대리~백담사~수렴동대피소~봉정암~소청봉~중청봉~대청봉(20km, 9시간 30분)
용대리에서 백담계곡과 수렴동계곡, 구곡담계곡을 거쳐 오르는 이 코스는 내설악의 빼어난 계곡미를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서 중간에 있는 백담산장, 수렴동대피소, 소청산장 중 한군데에서 숙박을 해야 한다.
아침 일찍 용대리에서 출발한다 하더라도 산행경험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당일로 정상까지 가는 것은 쉽지 않다. 대청봉 정상에서는 오색이나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다. 이 코스로 올라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는 2박3일 코스는 내,외설악을 연결하는 가장 대표적인 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5. 용대리~백담사~오세암~마등령~금강굴~금강문~비선대~설악동(21km, 9시간 30분)
아침 일찍 용대리에서 출발하면 당일로 하산이 가능하지만 집에서 용대리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주말을 이용한 1박2일 코스로 적당하며 숙박은 수렴동대피소에서 하는 것이 좋다.
중간의 오세암~마등령~비선대구간은 경사가 상당히 가파른 곳이다. 설악동 소공원에서 출발하여 용대리로 내려서는 코스를 잡아도 되지만 하산후 용대리보다는 속초가 교통이 편리하다.

6. 장수대~대승폭포~대승령~귀때기청봉~한계령 갈림길~끝청~중청봉~대청봉(15km, 9시간)
중간에 산장이 없으므로 하루 일정으로 중청대피소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장수대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초행자는 새벽에 출발하더라도 하루 일정으로 중청대피소까지 가기 어려우므로 이 코스를 피하는 것이 좋다. 한계령휴게소에서 서북릉으로 올라 끝청을 거쳐 대청봉까지 가는 단축코스가 많이 이용된다.

7. 남교리~응봉폭포~복숭아탕~대승령~대승폭포~장수대(12km, 7시간 30분)
이 코스 역시 중간에 산장이 없으므로 새벽 일찍 남교리에서 출발하거나 그 반대반향으로 올라 하루 일정으로 산행을 마쳐야 한다. 십이선녀탕계곡은 설악산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며, 대승령 아래에서는 우리나라 3대 폭포중 하나인 대승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오색 (남설악 매표소) 가는 길***

대청봉까지 오르는 최단코스의 출발점이자 남설악 점봉산 주전골의 입구인 오색에 가는 경우에도 한계령을 넘는 양양, 속초행 직행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계령을 넘어 영동지방 첫마을인 오색리에서 하차해야 한다
오색(五色)은 원통쪽에서 한계령을 넘어 영동지방으로 내려서면 나오는 첫마을로서 설악산의 정상인 대청봉 남쪽 사면으로 놓인 등산로의 출발점이며, 설악산과 함께 설악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남설악 점봉산 주전골의 초입이다.
오색에서 대청봉 남쪽사면을 따라 대청봉(1708m)에 오르는 등산로는 5.1km거리로 대청봉에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라서 연중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대청봉에 오르는 입구인 남설악매표소는 오색마을에서 서쪽(한계령방향)으로 44번 국도를 따라 500m 정도 걸어가면 도로 오른쪽(북쪽)으로 있다. 남설악매표소까지 가기 위해서는 오색마을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걷는 것보다는 오색마을 안쪽으로 걸어들어가 점봉산 주전골 초입의 숙박시설단지를 지나 오색그린야드호텔 앞으로 걸어올라가는 것이 더 낫다. 오색그린야드호텔 앞을 지나면 바로 길 건너로 남설악매표소가 나온다.

입구인 오색의 남설악매표소에서 정상인 대청봉까지는 5.1km거리로서 오르는데 4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상당히 가파른 경사의 등산로이다. 길은 아주 뚜렷하며 입구에서 정상까지 외길이라고 보아도 된다. 정상에서 오색까지 내려서는 데에는 보통 3시간~3시간 30분이 걸린다.
대청봉까지 오르는 여러 코스중 거리가 가장 짧은 이 오색코스는 일년 내내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라서 등산로의 토사침식이 극심한 곳이므로 가급적 이곳을 피해 다른 등산로로 정상에 오르는 것이 좋다. 능선이나 계곡을 따라 놓인 다른 주요등산로와 달리 이곳 오색코스는 대청봉의 남쪽사면에 놓인 길이라서 주변경관이 다른 곳에 비해 떨어질뿐 아니라 숲에 가려 전망 역시 좋지 못하며 가파르고 단조로운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는 곳이다.


***용대리 (백담사 매표소) 가는 길***
백담계곡(百潭溪谷)은 내설악의 대표적인 계곡으로서 우리나라 계곡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백(百)개의 담(潭)이 있다고 해서 백담계곡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어름치와 열목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백담산장 위부터 수렴동대피소까지의 계곡은 수렴동계곡이라 부르지만 사실 백담계곡과 수렴동계곡은 하나의 계곡이다.
내설악의 중심인 백담계곡에 가려면 인제,원통을 지나 진부령 조금 못미쳐 있는 인제군 북면 용대리로 가야한다. 용대리행(백담계곡 입구) 버스는 남교리(십이선녀탕계곡 입구)를 지나간다.
진부령방향의 46번 국도를 따라가다가 인제군 북면 용대리의 외가평마을(외가평마을은 원통에서 44번 국도를 따라 한계령방향으로 가다가 민예단지휴게소 앞 한계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진부령방향의 46번 국도로 십이선녀탕계곡의 입구인 남교리를 지나면 나온다.)
에서 도로 오른쪽의 국립공원안내판을 따라 인제 북천(北川)에 가로놓인 다리(가평교)를 건너면 내가평마을이 나오고 도로를 따라 600m쯤 가면 도로가 끝나는 곳 우측으로 큰 주차장이 있다. 정면의 내가평교 다리를 건너 300m쯤 걸어올라가면 백담계곡 매표소가 나온다.
용대리에서 매표소를 지나 계곡을 따라 백담사까지는 약 8km(20리)의 거리로서 걷는데 2시간 가량 걸리며, 길은 1차선으로 된 시멘트포장도로이다.
매표소 앞에서 계곡 상류 4km까지는 셔틀버스가 운행되며, 버스에서 내려 3km를(40~50분쯤소요) 걸어가면 백담사에 닿게 되고 백담사에서 300m쯤 위에 백담산장이 있다.
한계삼거리에서 남교리까지는 8km거리이고, 용대리의 외가평마을은 남교리에서 진부령방향으로 46번 국도를 따라 4km를 더 가야 한다. 남교리와 용대리 사이의 46번 국도변으로 민박집이 많으며 백담계곡 초입의 외가평마을과 내가평마을에도 민박집이 여럿 있다.
백담계곡을 중심으로 하는 내설악은 속초시 설악동에서 들어서는 외설악에 비해 찾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적어서 외설악에 비해 훨씬 호젓한 편이며, 백담사까지 가는 길이 완만하고 넓어서 어린이나 노인을 동반한 가족산행코스로 적당하다.


***설악산 가는 길***
원통은 내설악의 진입기점이고,속초시 설악동은 외설악의 진입기점이다.
외설악쪽은 속초시 설악동 한곳만을 들머리라고 할 수 있지만, 내설악지역은 들머리가 용대리(백담계곡 입구)와 남교리(십이선녀탕계곡 입구)로 나뉘어 있다.

외설악에 가는 경우 대중교통편을 이용한다면 속초행 직행버스나 고속버스로 속초시의 시외버스터미널이나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가서 설악동으로 가는 시내버스(7번)를 타면 되고, 승용차로 가는 경우라면 속초시 대포동 물치삼거리(설악동입구 삼거리)에서 설악동으로 바로 진입하면 된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가는 경우 대개 팔당, 양수리, 양평, 용문, 홍천, 인제, 원통을 잇는 6번, 44번 국도를 이용하지만, 최근 우회도로가 많이 생겼으므로 주말이나 연휴때에는 가급적이면 다른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서울에서 대중교통편을 이용할 경우 지하철 3호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나 7호선 상봉역의 상봉터미널, 또는 지하철 2호선 강변역 구의동의 동서울종합터미널을 이용하면 된다.

상봉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속초행 직행과 고속형 버스는 모두 원통을 거쳐간다. 용대리(백담계곡), 남교리(십이선녀탕계곡), 장수대까지는 한계령 경유 속초행버스를 타고 가다가 원통에서 갈아타도 된다. 장수대에는 한계령을 넘는 속초행 "직행"버스가 정차한다.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서화,천도리행 버스(하루 3회)도 원통을 거쳐가므로 이 버스로 원통까지 간후 용대리행이나 속초행으로 갈아타도 된다. 용대리행버스는 모두 남교리를 지나간다.

양양~둔전리는 하루에 2회(06:00/18:20) 운행된다. 속초에서 용대리 경유 춘천행 막차는 15:50(용대리에서 16:50)에 출발한다.

광주나 전주를 비롯한 호남지방에서 설악산에 갈 때는 홍천이나 춘천까지 가서 용대리행이나 속초행 버스로 갈아탄다.


서울--속초: 강남고속터미널: 첫차(06:30),막차(20:00) ,30분 간격 28회(4시간 30분), 심야버스(23:10, 23:30)
동서울종합터미널:(고속버스) 첫차(06:15),막차(18:05) ,하루 32회(5시간)
상봉터미널: 첫차(06:00)..막차(18:00)..하루 16회,(4시간40분)
김포공항~속초공항: 여객기 하루 6회 왕복운행.(50분 소요)

서울--원통: 상봉터미널-하루 22회. 동서울터미널-19회 운행.

서울--용대리: (상봉터미널/간성행).05:50~17:40. 50분 간격,(4시간) 18회 운행.
(동서울터미널/진부령 경유 속초행) 06:15~17:00, 7회.

부산--속초: (동부시외터미널) 첫차(06:40). 막차(13:40). 직통 10회..직행 4회. 7시간 40분 소요.
심야버스 4회(21:00, 22:00, 22:40, 23:30, 포항,동해,강릉 정차)

대구--속초: 첫차(06:10). 막차(14:45). 직통 7회..직행 5회..7시간 소요.

수원--속초: (시외터미널 상행대합실) 직행 8회(08:00/09:50/11:00/12:30/14:00/15:30/17:30/18:30)
5시간 소요. 용대리,미시령 경유.

서울--강릉: (강남터미널/고속). 첫차(06:00). 막차(19:40). 15분 간격. 3시간40분 소요.

서울--강릉: (강남터미널/우등고속). 첫차(06:00). 막차(19:40). 20분 간격.
심야버스(22:30, 22:50, 23:10, 23:30), 3시간 40분 소요.

대전--속초:(동부터미널) 인제,원통,양양 경유(09:20, 16:00), 원주 경유(09:20, 16:00).

대전--강릉: 1시간간격, 우등(첫차 07:00, 막차 19:00), 고속(첫차 08:00, 막차 18:00).

강릉~속초는 10분 간격으로 수시운행되며(1시간 20분 소요), 양양~오색은 30분 간격
,


글쓴시각:2003/05/21 18:32:12 from:61.251.17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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