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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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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891

불국사와 석굴암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으로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연기설화(緣起說話)를 전한다. 모량리(牟梁里)에 경조(慶祖)라는 가난한 여인이 아들 대성(大成)과 함께 살았다. 그들은 부자인 복안(福安)의 집에 품팔이를 하면서 그 대가로 밭을 조금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어느날 대성(大成)은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으리라"는 말을 듣고 와서 "우리가 전생에 선업을 지은 것이 없어 이렇게 곤궁하게 생활하니 지금 보시하지 않으면 내세에도 가난할 것입니다."고 어머니를 권하여 흥륜사(興輪寺)의 육륜회(六輪會)에 밭을 시주하였다. 얼마 후 대성이 죽었는데, 그날 밤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로부터 "모량리의 대성이 너의 집에 환생할 것이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김문량의 집안 사람들이 모량리를 찾아보니 과연 대성이 죽었음을 알 수 있었고, 그날 밤 김문량의 아내는 아이를 배게 되었다. 아이는 태어나서 왼손을 꼭 쥐고 펴지 않다가 7일 만에 풀었는데 '대성'이라는 글자를 새긴 금간자(金簡子)가 있어 이름을 다시 대성이라 하였고 그 어미 경조를 모셔다가 함께 봉양하였다. 대성이 자라서 토함산에서 곰을 사냥하고 산 밑 마을에서 자고 있을 때, 꿈에 곰이 나타나서 원망하였다. 대성은 곰을 위해 절을 지어줄 것을 맹세하고 용서를 빌었다. 이후 그는 사냥을 그만두고 곰을 사냥한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그 뒤로 불심이 더욱 깊어진 대성은 현세의 부모을 위하여 불국사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을 위하여 석불사(石佛寺:석굴암)를 세워 신림(神琳), 표훈(表訓) 두 스님을 머물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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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石窟庵)이 있는 토함산은 신라인들이 동악(東岳)이라 부르며 신성시하던 산이었다. 석굴암은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은 것으로 전해온다.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짓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석굴암은 그의 생전에 완성을 본 경우였다. 제일 마지막 공사에 해당하는 천정돌을 올릴 때의 일을 [삼국유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큰 돌을 다듬어 천정을 이려는데 홀연히 돌이 세쪽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분하게 여기며 잠깐 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천신(天神)이 내려와 만들어놓고 돌아갔다.' 창건할 당시에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다. 그러던 것이 조선 후기부터 석굴암으로 불리기 시작하여 조그만 암자에만 붙이는 '암(庵)'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지금 볼 수 있는 석굴암은 원래 석불사로 불린 사원의 금당(金堂)에 해당하는 것이다. 석굴암에 새겨진 조각들은 세계적인 걸작이며 한국 불교예술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는데 굴 가운데에는 높이 3.48m의 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전실과 굴 입구 좌우 벽에는 팔부 신장, 인왕 및 사천왕 등의 입상이 조각되어 불천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굴 내부에 본존불 바로 뒤에는 11면 관세음보살입상을 조각하였다. 또한 굴 천장 주위에는 10개의 감실이 있는데 그 안에 좌상의 보살과 거사 등이 안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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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은 전체적으로 네모꼴의 전실과 원형의 후실, 그리고 양자를 이어주는 통로로 이루어진다. 네모난 전실은 1960년대에 복원한 목조건물이 덮고 있는데, 원래의 모습도 이와 가까웠으리라 짐작된다. 후실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에는 인왕(仁王)이라고도 하는 금강역사가 서 있는데, 석굴암의 금강역사는 상체를 벗어 우람한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고 있는 전형적인 무사의 모습이다. 일제 강점기의 1차 수리 때, 석실의 내부에 쌓인 흙 속에서 또 다른 금강역사처럼 부조(浮彫)한 것이 아니라 환조(環彫)한 것이었기 때문에 석굴암의 원형에 의문을 갖게하는 점의 하나로 꼽힌다. 후실의 중앙에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본존불이 있다. 광배를 뒤쪽의 벽면에 따로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석굴암 본존불은 신라 불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형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후에 만들어진 많은 불상들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진다. 크기를 재어보면 머리가 약간 큰듯하지만, 예배하는 위치에서 올려다보면 균형잡힌 비례감을 느낄 수 있다. 석굴암 본존불이 있는 후실 입구 양쪽에는 기둥이 두개 서 있는데, 이 기둥 사이의 간격은 완성된 본존불을 들여놓기 어렵게 되어 있다. 따라서 석굴암은 본존불을 먼저 모신 뒤에 주위의 조각들을 배치하고, 가장 나중에 천정을 이은 것으로 추정된다. 석굴암이 김대성의 생전에 완성을 보았으리라는 추정도 이에 근거하고 있다. 석굴암의 신비함은 자연 암벽을 뚫지 않고 크고 작은 돌을 쌓아 만든 독특한 건축법이다. 그리고 조화문에 사용된 1:√2의 복합적 원리와 우주의 원리를 조형의 언어로 표현한 것은 수학, 기하학, 물리학, 천문학, 건축, 종교, 예술의 통일된 총체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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